[바레인] 역사
아라비아만의 진주라고 불리는 바레인은 아랍어로 “두 개의 바다”를 의미한다. 7세기 이슬람화 되기 전까지 바레인은 고대 이란의 왕조인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통치를 받았다.
7세기 이후 아랍 무슬림 통치를 받아온 바레인은 1521년 인도양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에게 정복되어 약 80년간 포르투갈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이후 19세기 초까지 바레인의 지배권을 대상으로 포르투갈, 오만, 페르시아, 오스만, 영국 등 강대국들과 아랍 부족인 알 칼리파 가문이 경쟁하였다.
9세기 초에, 걸프 지역에서 영국의 패권이 관철되었고, 1820년 영국과 알 칼리파 가문이 앵글-바레인 협정을 체결하면서, 알 칼리파 가문은 바레인에 대한 통치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바레인은 영국의 걸프 지역 통치를 위한 중심지가 되었으며, 인도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되었다. 이로 인해 영국은 바레인에 대한 광범위한 지배권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알 칼리파 가문은 1861년, 1880년, 1892년에 영국과 보호 협정을 체결하면서 외교권을 영국에게 양도함으로써 영국의 식민지배 체제로 통합되었다. 이 조약들을 통해서, 알 칼리파 가문은 영국만이 걸프 해상을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허가하는 대신, 영국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바레인 해상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다른 국가로부터의 공격을 막아줄 것을 약속하였다.
1932년 석유가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근대화로 접어들게 된 바레인 근대사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바레인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이웃 산유국에서 발생한 오일붐을 이용해 바레인을 걸프 해의 중요 무역중계 지역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세계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 아랍민족주의의 여파로 반 영국 분위기가 고조되자 1971년 영국군의 수에즈 이동 철군과 함께 족장 겸 왕이었던 셰이크 이사 이븐 살만 알 칼리파의 주도로 바레인은 그 해 8월 14일 독립을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