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 주요 사건 연대기(2000년~2010년)
최고관리자
바레인
0
1500
2000년 9월 | 아미르가 처음으로 비무슬림과 여성을 자문위원으로 임명하다. 자문위원에는 4명의 여성이 포함되는데, 그 중 1명은 기독교인 이다. 유대인 남성 사업가 1명도 자문위원에 포함되다. |
---|---|
2001년 2월 | 정치 개혁을 위한 국민 투표; 바레인인들은 바레인이 선출된 하원과 독립된 사법부를 갖는 입헌 군주국이 되어야한다는 제안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다. |
2002년 2월 | 바레인이 입헌 군주국으로 전환하고 여성들이 포괄적인 개혁과정에서 공직에 출마하도록 허락하다. |
2002년 5월 | 지방 선거가 실시되다. 거의 30년 만에 처음 투표였다. 처음으로, 여성들이 투표하고 입후보하였다. 그러나 의석을 얻는 데는 실패하다. |
2002년 10월 | 거의 30년만에 처음으로 의회 선거가 실시되다. 당국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선거 거부 운동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50퍼센트 이상이라고 밝혔다. |
2003년 5월 | 고문 희생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고문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고소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취소해 줄 것을 왕에게 탄원하다. |
2004년 4월 | 나나 하파드가 보건 장관이 되면서 정부 부처를 이끄는 최초의 여성이 되다. |
2004년 5월 | 이라크의 성지들인, 나자프와 카르발라에서의 전투에 반대하는 마나마 항의 시위. 경찰이 이 시위를 막으려고 한 이후, 왕이 내무장관을 해고하다. |
2004년 9월 | 바레인과 미국이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움직임을 비난하면서, 이것이 지역 경제 통합을 저해한다고 주장하다. |
2005년 3월-6월 | 수 천 명의 항의 시위자들이 완전히 선출된 의회를 요구하다. |
2006년 1월 | 미국 의회가 미국-바레인 자유 무역 협정을 실행시키는 법안을 승인한 이후에,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그 법안이 효력을 발생하도록 서명하다. |
2006년 3월 | 58명의 승객을 태운 유람선이 바레인 해안에서 전복되다. |
2006년 11월 | 야당인 시아파가 총선에서 40퍼센트를 득표하다. 시아 무슬림인 자와드 빈 살림 알 우라이드(Jawad bin Salem al-Oraied)가 부총리로 임명되다. |
2007년 9월 | 수 천 명의 불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부의 사면 조치를 활용하다. |
2008년 5월 | 유대인 여성, 후다 노누(Houda Nonoo)가 미국 주재 바레인 대사로 임명되다. 그녀는 아랍세계 최초의 유대인 대사다. |
2008년 12월 | 정부당국은 바레인 국경일에, 수제폭탄을 폭파시킬 계획을 한 것으로 알려진 몇 몇 사람들을 체포했다. |
2009년 4월 | 국왕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목으로 기소된 170명 이상의 수감자들을 사면하다. 이 중에는 국가 전복 혐의로 기소된 35명의 시아들이 포함된다. |
2010년 9월 | 20명의 시아파 야당 지도자들이 폭력적인 시위와 사보타주를 조장함으로써 군주정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받고, 선거 준비 기간 중에 체포되었다. |
2010년 10월 | 의회 선거에서 주요한 시아 야당인, 이슬람 국민 합의 협회(Islamic National Accord Association)는 적은 득표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