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개혁
날짜: 2013년 4월 28일
며칠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그랜드 무프티인 셰이크 압둘 아지즈 알 셰이크(Abdul Aziz Al-Sheikh)는 개혁을 요구하는 이슬람주의자들에게 경고하였다. 이 성명은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비난이며, 사우디 개혁가인 셰이크 살만 알 아우다에 대한 대답으로 이해된다. 살만 알 아우다(Salman al-Awda)는 사우디 왕국내에서의 권리 위반을 비난하고 개혁과 정치범 석방을 요청했다.
이전 사우디 ‘각성 운동’의 인물인 알 아우다는 무슬림 형제단의 이슬람주의자들의 사상에 매우 가깝다. 그는 지난달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재정적, 행정적인 부패, 엄청난 실업, 일반화된 가난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알 아우다는 사우디아라비아 내 많은 수니들 중의 한 명이며, 이슬람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이다. 2003년 이후,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에서 정치 개혁을 반복해서 요구해왔다.
아랍의 봄이 지구상의 마지막 절대 왕정 국가인, 사우디 통치권의 안정성을 위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우디 당국자들은 정권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시위자들에 맞서는 억압적인 조치로 대처했다.
사우디 왕국이 축출된 튀니지 대통령 지네 알 아비딘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를 받아들여 보호하면서, 튀니지의 새로운 혁명정부로 송환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또한 리야드는 1월 25일 혁명 이후, 전직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를 감옥에서 풀려나도록 최선을 다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변화와 혁명을 막을 수는 없었으나 양국가의 전제적인 통치자들에게 동정심을 표현했다.
사우디가 무아마르 가다피를 전복시키는 리비아 혁명을 지원하고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정권과 싸우고 있는 시리아 파벌들을 무장시키고 자금을 지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정부는 여전히 ‘아랍의 각성’에 반대하고, 민주화 과정과 역내 권력공유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의 정치 변화나 헌법 개정에도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2월 이후, 왕국은 주로 석유가 생산되는 동부 지역, 카티프와 아와미야의 시아파 거주 지역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히자즈 지역과 보수적인 나즈드 지역에서는 여성 운전 금지의 철폐를 요구하는 등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들이 발생했다.
사우디 당국자들은 이 시위들을 억압하고, 보안대가 카티프와 알 하사 지역의 시아파 시위자들에게 총을 발사해서 2011년과 2012년에15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유명한 시아 성직자인 셰이크 니므르 알 니므르를 포함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리야드가 시위자들에 맞서는 과도한 무력행사를 피해야하고 주민들의 평화적 집회 권리를 존중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리비아와 시리아에서의 혁명에 대한 사우디의 지원이 바레인으로 확장되지는 않았다. 바레인은 사우디 동부와 강력한 역사적인 유대 관계를 가진 시아파 다수가 거주하는 작은 이웃이다. 바레인은 역사적으로 아라비아 반도 동쪽에 위치해서, 북쪽 바스라(현재 이라크)로부터 남쪽의 오만까지 뻗어 있었으며, 페르시아 걸프 연안을 따라서 하사와 카티프를 포함하고 오늘날의 다른 걸프 국가들을 포함했다.
이러한 이유로, 사우디 정부는 진정한 정치 개혁과 군주와 권력공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바레인 당국자들을 지원했다. 사우디와 다른 걸프 국가들은 역내의 또 하나의 독재 정권인 왕정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바레인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였다.
전임 미국 주재 레바논 대사는 알카에다 출신들을 포함하여 대부분 이슬람주의자 시리아인과 다국적 전사들이 주도하는 시리아에서 군사 혁명을 사우디와 카타르가 지원한다고 설명하였다. 이 대사는 두 왕국들이 변화가 시리아로부터 자신들의 나라로 확장되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 왕국에서는 정당들이 금지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2월에, 역내 아랍의 봄으로 영감을 받은 10명의 학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의 정당인 움마 이슬람당(the Umma Islamic Party) 결성하고, 왕에게 승인을 요구하였다.
이 새로운 정당은 “정부 선출할 권리를 포함하는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내에서 여성의 역할을 증진시키고,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야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05년에 지방 자치 위원회 위원들을 뽑는 단 한 번의 선거가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당국자들이 지명한다.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이후, 설교자들, 학자들, 활동가들을 포함하는 26명의 사우디 지식인들이 압둘라 왕에게 급진적인 정치 개혁을 호소하였다. 특히, 슈라 위원회(의회)의 완전한 선거를 포함하는. 이 편지는 만약 통치자가 주민들의 개혁, 발전과 자유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사우디 군주정에서 혁명의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들은 총리와 왕 사이에서 권력 분할을 요구하였고, 정부가 슈라 위원회를 신뢰하도록 요구하였다. 현재는 왕이 총리를 겸한다. 활동가들은 사법부의 개혁과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였다.
시아프 활동가인 푸아드 이브라힘(Fuad Ibrahim)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법 제도는 부패했고, 통치 왕조에 완전히 의존적이다. 많은 경우에, 왕자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도록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출처: al-mon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