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는 많은 분쟁을 하나로 통합하며, 두 지역 분쟁의 중심에 있다
날짜 : 2012년 12월 30일(일)
내가 다마스쿠스에서 베이루트로 돌아온 30분 후에, 내 전화에서 시리아 지식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에게 수치다, 독립에 대한 수치다!” 그는 분노해서 논리적인 일관성이 없었고, 그가 무엇을 반대하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내가 다마스쿠스에 있을 때 시리아 정부의 구성원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어째든 곧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던 나의 잘못인 것 같다.
우리의 대화는 고도로 지적인 것은 아니었다. 신랄한 의견 교환 이후에, 나는 그가 그렇게 강렬하게 느낀다면, 그가 나에게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그만두고, 베이루트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에 알레포로 가서 반란자들과 함께 싸우지 않는지를 물었다. 그 후 서로 전화를 끊었다.
다마스쿠스와 베이루트 사이의 짧은 거리를 운전하는 것은 하나의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 것과 같다. 시리아 수도에서 분명하고 상식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국경 넘어 레바논에서는 물의를 일으키고, 소수자의 관점이 된다. 시리아 밖에서 미디어와 외교적인 예측들은 반란자들의 임박한 승리와 바사르 알 아사드의 패배를 반복적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추론에서 무시되는 것은 시리아의 주요 도시들과 중심지들 대부분을 거의 대부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마스쿠스의 안과 밖에서 감지되는 차이는 국제적이고 지역적인 미디어가 전쟁을 설명하는 방식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설명된다. 시리아 수도에는 외국인 기자들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자를 얻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반란자들은 고도로 세련된 미디어 장치를 가지고 있다. 종종 외국에 기지를 두었다. 이것들은 각각의 사건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을 제공하며, 선택적으로 유튜브에 의해서 지원받는다.
분명히, 사건들에 대한 반란군의 해석은 심하게 자신들의 편에 치우쳐 있고 시리아 정부를 악마로 만든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베이루트뿐만 아니라 런던이나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 미디어들이 본질적으로 양질의 허위 선전을 거의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마치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앞서서, 외국 기자들은 미국 비자를 얻을 수 없어서 공화당의 선정 정보에 의존해야만했다. 특히, 멕시코와 캐나다에 기반을 둔 공화당 행동가들로부터 나오는 선전에 의존해야했다.
다마스쿠스에서 포성이 울려 퍼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도시가 포위된 것은 아니다. 홈스로 가는 길과 데라고 가는 길은 열려있고 이 길은 베이루트로 향한다. 반란군이 한 구역을 장악했을 때, 정부군이 포탄을 쏘았고, 일부 사람들이 죽고, 나머지 사람들은 강제로 떠나도록 하였다. 손상되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전기, 빵, 가스 공급 등을 포함하는 일상생활 유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반란군들은 대중들 사이에서 일부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시리아인들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막다른 궁지에 몰려 있다. 알레포와 다마스쿠스에 대한 반란군의 맹공격은 불안정하다. 그러나 정부군은 반란군을 장악한 영토 밖으로 몰아낼 힘이 없다. 특히, 북쪽에서, 반란군들은 하마, 이들립과 알레포 주변의 시골에서 기지를 반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진척 상황은 여전히 느리다.
혁명은 내전으로 전환되었다. 2011년 3월에 시작된 잔인한 경찰국가에 대항하는 시리아인들의 봉기는 점차 알라위, 기독교인, 드루즈와 다른 소수파들에게 향하면서 이들의 제거에 목표를 둔 종파적인 선전으로 변질되었다.
그들은 알라위 장교들이 의식에 따라 참수되는 장면을 유튜브에서 보고, 아사드가 패배한다면, 어떤 운명이 그들을 기다릴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게다가, 알페포가 커다란 타격을 받는 것을 목도한 도시의 중산계층 시리아인들은 무정부상태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이 있고, 똑 같은 일이 다마스쿠스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이 달 초 수도에 도착했을 때, 그 분위기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15%는 정부를 지지하고, 15%는 정부를 반대한다. 70%는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되기 전에 이 전쟁이 끝나기를 원한다.”
현재의 교착 상태가 타개될 수 있을까? 정말로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반란군들이 재정, 훈련, 무기를 대대적으로 지원받지 못한다면, 이것이 즉시 결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지는 않을 것이다. 대안으로, 워싱턴과 런던은 시리아 지도부내에 균열을 오랫동안 희망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 몇 주 동안에 널리 알려진 일련의 탈당도 정권의 핵심부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내전 상황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 전쟁은 오래전에 이미 “최후의 잔인한 정치”라고 부른 북아일랜드에서의 단계에 이미 도달했다. 북 아일랜드에서의 너무 많은 유혈이 협상과 타협으로 이끌었다.
미국과 그 동맹의 정책은 점차 이상해지고 있다. 한편에서 그들은 정부 반대파인 국민 연합(National Coalition)을 시리아의 합법적인 정부로서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국민 연합의 가장 효율적인 전투부대인 알 누스라 전선(the al-Nusra Front)을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이름 붙였다. 2003년 이후 이라크처럼, 시리아도 무슬림 세계 전역에서 지하드 전사들을 끌어들이는 자석이 되었다. 워싱턴에서는 지하드 전사들을 강화시키고 시리아 국가의 정부 조직을 해체시키는 노골적인 반란군의 승리에 대한 열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번 위기에서 시리아의 문제는 너무 많은 분쟁이 하나로 뭉쳐졌다는 것이다. 반란을 지지하는 세속주의자들은 “정권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강조한다. 그들은 그것의 종파적인 특성을 중요시하지 않고, 이것이 과장되어 있으며, 정부에 의해서 조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라크에서처럼 시리아에서도 종파주의와 민주주의는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라크에서 공정한 선거는 수니를 대체하는 시아파 다수에 의한 통치를 의미했다. 시리아에서, 그것은 알라위(the Alawites)와 그들의 동맹을 대체하는 70%에 이르는 수니 주민들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두 국가에서, 민주적인 변화는 폭발적인 종파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다수의 통치는 공동체가 권력을 장악하는 변화를 의미한다.
시리아의 위기는 훨씬 더 복잡하고 두 개의 오래 계속된 지역 분쟁의 중심지가 되어서 악화되고 있다. 이것은 무슬림 세계 전역에서 수니와 시아 사이의 점증하는 대결이고, 두 번째는 이란과 그 친구들에게 반대하는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 그들의 동맹을 수렁에 빠뜨리는 분쟁이다.
현재의 교착 상태가 어떻게 타개될 것인지를 아는 것은 어렵다. 다마스쿠스, 알레포, 홈스는 점차 15년 동안 내전을 겪은 베이루트처럼 느껴진다. 이 도시들의 일부는 일상생활에 집착하고 있다, 반면 몇 블록 덜어진 곳에서는 저격병들이 폭격으로 무너진 빌딩들에서 은신하고 있다. 어느 편도 상대편을 좌절시킬 힘이 없다. 크고 작은 군지휘관들이 이 나라의 실제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시리아의 상업 중심지인 알레포에서, 반란군들이 주로 열중한 일은 도시를 약탈하는 것이다. 봉기가 무장 반란으로 되면서 본래의 민주적인 목적을 무시한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완전히 외국의 간섭 없이, 협의된 해결책이 필수불가결하다.
출처: Independ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