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시아 무슬림 항의 운동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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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3년 3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아 무슬림들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항의 시위를 계속한다. 카티프에서 공개적인 반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 카티프 시위대는 아이폰을 소지하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시위상황을 유튜브에 올린다.

 

시위 조직자들은 그들의 숫자와 정부의 무능력으로 자신들이 발견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아부 자키(Abu Zaki)는 “정부는 모든 사람들의 트위터 사용자의 이름을 추적할 수 없다. 당국자들은 선택해야만하고, 내 이름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시위대들은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 더 젊은 무장활동가들은 군주제의 제거와 독재적인 왕을 지지하는 미국 정책의 종식을 요구한다.

 

아부 무함마드, 아부 자키와 몇몇 다른 무장 활동가들은 카티프 인근에 있는 가난한 시아 마을인 아와미야에 있는 아파트에 모인다. 아와미야는 큰 도시에 인접한 작은 시아 마을이고, 같은 크기의 수니 마을보다 현저하게 가난하다.

 

강하고 검은 차가 약하고 푸르스름한 사우디 커피와 함께 제공된다. 카티프의 시위 운동은 커피보다는 차를 닮았다.

 

아부 무함마드는 나에게 “시위자들이 여전히 강력하다. 왜냐하면, 주민들이 사우디인으로서의 정치적 권리와 시아로서의 종교적/사회적 차별에 반대하여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시아들은 직업, 주택, 종교 활동에서 차별받고 있다. 예를 들면, 카티프는 시아 공동묘지가 없다. 단지 4명의 시아가 1왕에게 조언하는 임명된 입법기구인 50명으로 구성되는 슈라 위원회에 들어가 있다.

 

아부 무함마드는 “시아로서의 우리는 군대에서 직업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우디인들과 마찬가지고 똑 같은 정치적인 억압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권리를 주지 않고, 이 국가의 부를 훔치는 절대 군주제하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이러한 차별과 억압에 대한 주장들을 부정한다. 리야드에 있는 내무부 대변인인 만수르 알 투르키 소장(Major General Mansour Al Turki_은 외국 언론인들과 자주 만나는 자문위원이다. 알 투르키는 부드럽고, 상냥하고 서구인들과 인터뷰하는 기술이 매우 능숙하다.


그는 시아 차별에 대한 책임이 사실이 아니라고 간단히 일축했다.


그는 나에게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이들은 자신들을 표현할 뿐이다. 시아 다수는 매우 높은 수준에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셰이크 니므르 알 니므르를 지지하는 동부 지역의 빈번하고 상당히 규모가 큰 시위를 설명하지 못한다. 카리스마적인 시아 성직자는 정부의 편에서는 오랫동안 가시였다. 그는 차별에 반대하여 기꺼이 공개적으로 말하고 무장 행동을 요구한다. 이것이 그가 젊은 세대의 활동가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몇 달 동안 그는 거주지를 옮기면서 체포를 피하면서 큰 집회 동안에만 대중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2012년 7월에, 그가 카티프에 있는 자신의 집을 잠깐 방문한 동안에 당국자들이 그를 체포했다. 그는 총을 맞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교전이 있었고, 자신들을 방어를 위해서 총을 발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셰이크의 형제인, 무함마드 알 니므르에 따르면, 이 셰이크는 비무장한 상태였다. 그는 이 셰이크가 공개적으로 기소되지 않았지만, 왕에게 반대하여 소요를 부추기고 불법적인 시위를 조직한 것에 대하여 장기간의 감옥형에 직면해 있다고 들었다.

 

경찰이 쏜 4발의 총탄이 그의 넓적다리 뼈를 부셔뜨렸다. 알 니므르는 “만약 그가 적당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 절름발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체포 이후, 알 니므르의 인기는 급증하고 있다. 이 지역 전역에서 솟아나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낙서와 그의 이름을 부르면 정기적으로 행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아 지도자 셰이크 무함마드 하산 알 하비브(Mohammed Hassan al Habib)는 계속되는 시위를 이해하기를 제안한다. 이 성직자는 카티프 외곽 거리에 있는 온건한 가정에서 살고 있다. 셰이크 알 하비브는 차와 커피에 이외에 특별히 스위스 초콜렛을 덧붙인다.


알 하비브는 나에게 “동부 지역 운동은 군주제를 유지하는 민주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우리는 의회에 실제적인 권력을 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정당 설립,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허락해야한다. 그러나 왕은 여전히 최종적인 권력이다. 왕이 양보해야한다.”주장하면서, “우리는 체제를 쓰러드리거나 제거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많은 젊은 시위자들이 개혁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활동가인 아부 무함마드는 “사람들은 카티프에서의 억압 확대에 대한 반응으로 이제 통치 가문의 전복을 원한다. 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한 최고의 정부 형태는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제라고 생각한다.”로 밝혔다.

 

영국 스타일의 입헌 군주제 요구는 서구의 기준에 길들여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것은 반역이다. 내무부의 알 투르키는 “국민들은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서 불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법적인 과정은 군주제의 종결 요구를 포함하지 않는다.

 

알 투르키는 “저항 세력은 이란에 의해서 관리되고 시아 무슬림 독재정권을 수립하려고 한다. 이란 정부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그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다.”고 말한다.

 

알 하비브는 이 운동이 이란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사실, 그는 2009년 대통령 선거 이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다루는 이란 정부를 비난한다.

 

그는 “2009년에 나는 이란에 있었다. 시위를 하는 것은 시민들의 합법적인 권리였다. 이란 정부는 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란의 위협’은 사우디 정치의 토대로 남아있다. 예를 들면, 2011년 3월에 이웃 국가인 바레인 자체에서 분출된 아랍의 봄 봉기를 진압하기 위하여 사우디 군대 파견을 정당화시켜준다. ‘이란 위협’은 또한 사우디 무장 군대에 대한 막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를 정당화시켜준다.

 

풍부한 석유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치 가문은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 대통령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미국은 1943년에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에 군대 사절단을 파견하였고, 1953년에 사우디 군대를 훈련시키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 경쟁의 일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군대를 강화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서구에게 확실한 석유 공급자였다. 미국은 왕가의 내부 억압에 간섭하지 않았다.

 

최근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이 사우디의 영토에 무인 항공 기지를 설립하도록 허락하였다. 사우디는 계속해서 미국의 대량 군사 원조를 받는다.

 

2010년에, 미국 의회는 10년 동안 사우디인들에게 군사 원조로 600억 달러를 요구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2011년에, 오바마 행정부는 사우디가 진보된 미제 전투기와 다른 고급 장비들을 구입하기 위하여 300억 달러의 원조를 할당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내 총생산(GDP)의 10퍼센트를 군대비용으로 쓴다. 이것은 1인당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비용이다. 미국과 사우디 지도자들은 이러한 원조는 왕국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체를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300억불의 보따리에 대해서 말하면서, 정치-군사 문제 담당 국무 차관보인 앤드류 J. 샤피로는 “무기 판매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권에 대한 외부의 위협에 맞서 방어하고 단념시키는 능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불운하게도, 사우디 무장 군대는 방어 능력이 입증되지 않았다. 1990년 이라크가 근처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사우디 군대는 예상되는 위협 맞서 자체 방어에서 사실상 무력했다.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이 걸프전에서 싸웠고, 사우디인들은 비용을 부담했다.

 

 

출처: global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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