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낀 바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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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낀 바레인 



날짜: 201144 

 

바레인에서의 시위는 단지 정치적 권리와 자유주의 개혁을 위한 국내 투쟁만이 아니다. 시아파가 다수인 지역에서 수니파 왕정이 통치하면서 발생하는 종파 분쟁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사이에 급속도로 점증하는 갈등의 일부이기도 하다.

바레인에서의 시위는 214일에 시작되었다. 이날 많은 청년들이 거리에 나와 최근에 아랍 세계 여기저기서 제기된 것과 똑 같은 개혁 요구를 하였다. 그러나 바레인에서의 불안정은 다른 차원의 문제를 포함한다. 수도인 마나마와 그 주변 마을들에서 시위자들은 압도적으로 시아들이며, 자유주의적인 수니들이 간간히 섞여 있다. 반대편에 있는 보안대는 대부분 수니이며 시아 다수 국가에서 수니 왕정을 받쳐주고 있다.

 

결국, 바레인에서의 시위는 정치적 권리와 자유주의적인 개혁을 위한 국내 투쟁일 뿐만 아 종파 분쟁이기도 하다. 그것은 시아 공동체에 대항하는 집단적인 체벌과 소수종족 청소라는 추악한 색채를 띤 종파분쟁이다. 정부는 단지 구체적인 개인들뿐만 아니라, 주요한 반대파 신문 알 와사트(al-Wasat)와 보건 센터와 같은 시아 기구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시위자들은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사이의 증대되는 분쟁의 일부이며, 이란도 이 분쟁을 활용하려고 한다.

종파 분열(The Sectarian Divide)

입헌 군주제 요구(The Quest for Constitutional Monarchy)

국내 투쟁이 국제화되다(Domestic Struggle Becomes International)

입헌 군주국으로부터 공화국 체제로(From Constitutional Monarchy to Republic)

정권의 응답(The Regime’s Response)

바레인 문제의 국제화(The Internationalization of the Bahraini Problem)

바레인에서 현재 위기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은 경쟁적인 국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았다. 특히 무엇보다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양국의 직접 개입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 이란 도한 이 과정에 영향을 주었다. 이란은 직접 연루되지는 않았으나 잠재적 출현이 바레인에서의 사건들에 대한 사우디의 인식을 색칠한다. 사우디와 바레인 정부는 이란이 이 시위를 바레인에 대한 지배권을 수립하는 수단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워싱턴과 바레인의 저항세력은 이란은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테헤란이 이 상황으로부터 유리한 무엇이든 끌어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인들은 바레인에서의 이해관계-이란을 누르고, 걸프 왕국들을 보호하면서, 사우디 내의 시아 주민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는 시위를 억압하는 강경 정책이 주는 최선이라고 믿는다.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협상은 통치 가문의 권력을 침식하고, 잠재적으로 다른 걸프 국가들도 똑 같은 위험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스러운 전례를 창출하는 타협으로 이글 것이다. 실젤적인 권력을 가진 선출된 의회로 이끄는 타협안은 또한 시아 다수파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이란의 지배권으로 가는 문을 열 수도 있다. 사우디와 다른 걸프 국가들은 민주적인 제도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이라크에서 발생했다고 믿는다. 강경파들이 진실로 사우디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변화의 불가피성에 대해서 눈을 감던지 간에, 그 정책은 적어도 분명하다.

 

그러나 바레인 위기를 다루는 미국의 관심사는 제5함대의 본부가 있는 군사 기지에 대한 통로를 보호하는 것이고, 손상된 미국-사우디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며, 동시에 민주화 시위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분명한 정책을 통해서 충족될 수 없다. 이것은 미국을 어려운 입장에 서게 만든다.

 

만약, 워싱턴이 바레인 정부로 하여금 진정한 개혁적인 조치를 취하게 압박한다면, 그것은 중동에서 민주화에 헌신한다는 것이며 사우디와 바레인의 통치가문을 화나게 할 것이고, 해군 기지 통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만약 미국이 통치 가문을 너무 심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온건한 개혁 조치들을 후원한다면, 그것은 바레인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해군 기지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화해에 도움이 되지 않고, 변화를 주장하는 아랍인들에게 미국이 그들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신시킬 수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만약 미국이 시위대들에 대한 억압과 시아 주민에 대한 집단 체벌을 무시하면서 바레인 통치 가문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절대적으로 후원한다면, 그것은 사우디인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것이고, 걸프 지역의 다른 통치 가문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에 관한 믿음을 파괴할 것이다. 미국이 다시 한 번 권위주의적인 정권의 편을 든다면, 그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처음에, 위싱턴은 바레인에서의 개혁을 밀어붙이기로 했다가,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시위에 직면하여 재빨리 협상을 진척시키는 쪽으로 움직였다. 봉기 발발 10일안에 미국 제프리 펠트만(Jeffrey Feltman) 중동 담당 차관보는 바레인에 있었다. 그는 225일과 33일 사이에 계속해서 바레인을 4회 방문하였으며, 정부 관리들과 저항 세력 대표들을 만나서, 모두를 대화와 타협으로 가도록 압력을 행사하려고 하였다. 국방부 장관 로버트 게이트(Robert Gates) 또한 바레인을 방문하였고, 바레인이 중대한 개혁을 도입해야하며, 걸음마 단계는 충분하지 않다고 312일에 밝혔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바레인 통치 가문이 굴복하지 못하도록 설득하였다. 결국, 사우디의 충고가 성공하였다. 바레인은 다른 GCC 국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사우디 군대가 바레인으로 들어갔고, 다른 GCC 국가들의 소규모 파견 부대가 뒤 다라 들어갔다. 사우디인들이 들어간 이후, 314일에 펠트만 차관보는 바레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정부 관리들과 불편한 회의를 했고, 혼자서 협상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려고 했다.

정부가 채택한 정책은 시위를 무산시키기 위하여 체류 가스, 고무총탄뿐만 아니라 실탄을 사용하고, 탱크, 장갑차 등으로 마나마와 그 주변 마을들을 둘러싸고, 시아 주민들 사이에서 불안감을 확산시킴으로써, 질서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 진압 사태 이후, 미국은 대체로 침묵을 지켰고, 비난이 약화되면서 중간 수준의 관리들로부터 나왔다. 워싱턴은 당분간 사우디인들이 바레인에서의 영향력을 위한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수용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이 당장 선행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은 계속될 수 없는 정책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금까지 리비아 위기에서, 그리고 시리아에서의 현재 점증하고 있는 고통으로 그 평판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에 대한 비용을 아꼈다. 이러한 사건들이 바레인을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곧, 이 작은 섬에 주목할 것이고, 워싱턴은 무엇을 보호해야할 것인지를 재고해야만 할 것이다.

 

 

출처carnegieendow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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