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원 교수 “수아드 알사바, 걸프문학 흐름 바꿔”

최고관리자 0 2016

수아드 알사바 시집 ‘쿠웨이트 여자’ 번역한 장세원 교수

 

우리가 알고 있는 아랍문학은 ‘아라비안나이트’가 전부가 아닐까. 그런데 ‘아라비안나이트’도 아랍이 아닌 인도문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책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이집트 출신의 노벨상 작가인 나집 마흐프즈의 ‘도적과 개들’까지는 알고 있겠지만.

 

그만큼 아랍은 우리와 멀다. 아랍문학 전공자도 적고 소개하는 출판사도 많지 않다. 국내 번역된 아랍 소설, 시는 100권이 넘지 않는다. 그 중에 영역본이 아닌 순수 아랍어판을 번역한 경우는 더욱 드물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번역본이 나왔다. 만해문학상을 받은 쿠웨이트 왕족 출신의 여류 시인이자 여성운동가인 수아드 알 사바의 시집 ‘쿠웨이트 여자’가 번역돼 출간된 것. 영역본을 바탕으로 아랍 여류시인들의 작품이 간간이 소개되긴 했으나 아랍어 시집이 온전하게 번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작품 번역에 단국대 GCC연구소장인 장세원 교수와 한국외국어대 이동은 교수가 참여했다. 5일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만난 장세원 교수는 한국에 몇 안 되는 아랍문학 전문가다. 국내 아랍문학의 대모인 송경숙 외국어대 명예교수로부터 팔레스타인 문학을 배운 후 요르단대에서 아랍어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동 여성문학의 이해’ 등의 저서와 ‘눈의 구속’, ‘자비바와 왕’ 등의 번역작업을 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아랍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수아드 알 사바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2010년 경에 수아드의 시를 처음 봤는데, 우선 걸프국가에서 여성이 당당히 얼굴을 내밀고 활동하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2004년 사우디아라비아 문인협회를 방문했을 때 본 문인협회 명부에서 남자 작가의 얼굴은 싣고 여자는 싣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킹사우드대에서도 여학생들이 남자 교수의 수업은 따로 원격강의로 듣는 것을 보면서 충격이 컸죠.”

 

그는 작품 면에서도 수아드의 시는 기존의 아랍 시들과 다른 점이 많아 번역작업이 즐거웠다고 했다. 지도자에 대한 과도한 찬양, 조국에 대한 일방적인 찬가 대신 테러, 전쟁, 경제동물이 돼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아랍여성의 아픔을 대변하는 내용에서 변화하는 걸프문학의 흐름을 발견했다.

 

제대로 된 아랍어 사전도 없어

 

장 교수는 이번 작품을 번역하면서 원본 시의 행과 운을 가능한 맞추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촉박한 시간에 이뤄져 부족한 점도 많다고 고백했다.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아랍문학 번역이 잘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아랍 문학이 내용면에서 대중의 흥미를 끌기 힘듭니다. 아랍문학의 주제, 소재가 개인적 경험 의존도가 높고 민족, 공동체의 공감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불안한 중동정세의 영향으로 좋은 작품을 출간하는 현지 출판사도 적고요. 그나마 고전 중에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 ‘수전노’, ‘칼릴라와 딤나’ 등의 작품이 번역되고 있죠.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의 적은 아랍문학 번역 인력과 작은 시장 때문이죠. 이슬람에 대한 편견도 크고요. 지금은 시장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고 관심을 쏟을 때입니다.”

 

대중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기획력 있는 아랍문학 전문가도, 풀도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에 나온 아랍 작품도 대부분 영역본을 재번역한 수준이다. 장 교수는 이 문제가 중동에 부는 한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요즘 아랍권 나라에서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나 K-POP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국내에 아랍어로 번역할 사람이 많지 않아요. 대부분 현지인들이 영역본을 아랍어 자막으로 처리하고 있어요. 돈과 시간의 문제도 크죠. 그렇게 해서 한국인의 정서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의문이에요.”

 

결국 다시 지원의 문제다. 장 교수는 GCC연구소도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후원없이 발전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윤부터 생각하는 기업의 펀딩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국가 1인 연구원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 평생을 한 국가만 연구하는 거죠. 충분한 보상을 해 주면서요.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죠. 다시 문학으로 돌아가 이야기하면, 아랍어 사전을 만드는 일이 아주 중요하죠. 지금 나온 사전은 단어장 수준에 불과해요. 출판사도 시장이 워낙 작으니 관심이 없죠. 그런데 제대로 된 아랍어 사전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지원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또 오일 달러를 끌어들이는 방편으로 문화를 생각하는 저속한 수준의 의식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상대를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문화가 근간이 돼야 하는데 한탕을 위해 도구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아랍·중동·이슬람 관련 연구소에 정부 및 기업의 투자는 전무한 실정이다.

 

걸프국가 10년내 서구권과 석유채굴권 계약 만료, 한국에 기회

 

그럼 왜 우리는 아랍 문학을 봐야 하고, 아랍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걸까. 장 교수는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번째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아랍권만 2억5000~3억명이고 이슬람권으로 하면 13억명 정도입니다. 두 번째, 중동은 세계사적 문명의 시원입니다. 최근에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자원보유국으로 눈여겨 봐야 할 대상이고요. 마지막으로 경제침체 속 튼튼한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통 큰 투자를 하는 게 대부분 중동 국부 펀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 상황에서 한국이 중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신성장 동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걸프국가들은 대부분 10년 내에 서구 자본과의 석유탐사개발권 계약이 만료된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다는 의미다. 또 수많은 교통, 전기, 수도 인프라 건설이 진행되면서 예상치 못한 쓰레기 처리가 요즘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노하우를 갖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많다는 점이다. 또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원유가공 플랜드 건설에 걸프국가들이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 기회다.

 

정치적으로도 한국이 2월 한달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을 맡게 되면서 중동문제와 관련해 의제 개발, 심의, 실행하는 단계에 모두 개입이 가능해졌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중동문제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된 것이다.

 

“현재 외교통상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최근 케리 신임 미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전화한 국가가 한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터키, 캐나다, 멕시코, 일본 등 7개 나라였죠. 국제적 현안을 갖고 있거나 인접한 나라들이죠. 의장국으로 우리가 이-팔 평화, 이란핵문제 등 국제 현안 문제를 다룸으로써 국격을 높이고 리더국가로 국제적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이런 인식하에 박근혜 당선인의 방문 3순위가 중동이 되야 하지 않냐는 목소리가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교수는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에서 불었던 민주화 혁명에 대해 “근대 이후 최초의 아랍민중봉기이고 실제로 정권교체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각 나라가 정권교체 이후 더 불안정해진 상황을 보며 다른 아랍 국가들에게 좋지 않은 학습효과를 심어주었다”며 “민주화 혁명의 완전한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혁명 자체가 감성적, 우발적으로 발생해 확산 속도가 도미노식으로 너무 빨랐어요. 동쪽 아랍국가는 ‘내부단속’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죠. 타도 대상도 정부를 향했으나 실제는 불안한 미래와 경제적 고통 문제가 컸고요. 아랍식 민주주의, 아랍식 정치체제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아랍 민중 봉기가 어떤 결과가 되든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함께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는게 중요하죠.”

 

장세원 교수는

 

중동 전문가인 장 교수는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86학번이다. 튀니지 연수 후 1988년 서울올림픽때 아랍어 통역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공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1988년 나집마흐프즈가 노벨평화상을 받은데 영향을 받아 아랍문학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가 추천하는 아랍 문학은 김능우 서울대 교수가 번역한 ‘세계민담전집 아랍편’과 ‘황금마차’, 홍경숙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유산’이다. 김능우 교수가 번역중인 ‘알 무알 라까트(정형장시)’는 고대하는 작품 중 하나. ‘알 무알 라까뜨’는 아랍문학의 시작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GCC국가연구소는 사우디, 카타르, UAE,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등 걸프협력회의 6개 국가를 연구하는 단체로 아랍중동국가 및 기구 중 한국과의 유일한 FTA 체결 대상 기구다. 장 교수는 장기적으로 GCC국가연구소+아랍문화연구소+비지니스 센터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글·사진=김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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